타자기 정비를 마쳐 기가 막힌 타격감을 되찾았다면, 이제는 타자기의 '얼굴'인 외관에 눈길을 돌릴 차례입니다. 잘 닦인 수동 타자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이자 서재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오브제가 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다락방이나 빈티지 숍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타자기들은 대부분 크롬 도금 부품이 뿌옇게 흐려져 있거나 붉은 소금 같은 녹이 슬어 있고, 본체 도색면은 먼지와 손때로 찌들어 고유의 빛을 잃은 상태가 많습니다.
제가 영입했던 1950년대산 독일제 올림피아(Olympia) SM3 모델이 딱 그랬습니다. 작동은 완벽했지만, 양옆의 반짝여야 할 크롬 노브와 뒷면의 메탈 바가 회색빛 먼지와 점점이 박힌 붉은 녹으로 뒤덮여 있어 무척 삭막해 보였습니다. 성급한 마음에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가 미세한 스크래치만 잔뜩 남겨 도금 층을 영구히 망가뜨릴 뻔했었죠. 오늘은 기계에 상처를 주지 않고 새것처럼 눈부신 광택을 되찾아주는 안전한 크롬 녹 제거법과 재질별 외관 도색 관리 공식을 알려드립니다.
크롬 도금 부품의 녹과 먼지 제거: 은박지(알루미늄 포일)의 마법
타자기의 자판 테두리, 캐리지 노브, 측면 레버 등 반짝이는 금속 부품들은 대부분 황동이나 철 위에 '크롬 도금'을 입힌 것입니다. 이 부품에 핀 붉은 녹과 찌든 먼지를 제거할 때 철수세미나 거친 사포를 대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크롬 도금 층은 생각보다 얇아서 거친 도구를 쓰면 순식간에 벗겨져 내부의 누런 황동이나 벌건 속살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장 안전하고 놀라운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주방에서 쓰는 '은박지(알루미늄 포일)'입니다.
알루미늄 포일과 물을 이용한 녹 제거법
가정용 알루미늄 포일을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뭉쳐서 둥근 공처럼 만듭니다.
뭉친 포일과 타자기의 크롬 부품 표면에 물을 살짝 묻힙니다. (물 대신 콜라를 쓰면 탄산과 산성 성분 덕에 녹이 더 잘 녹아납니다.)
포일의 반질반질한 면으로 크롬 표면의 녹슨 부위를 부드럽게 문질러 줍니다.
문지르다 보면 시커먼 회색 국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는 알루미늄과 크롬 녹이 반응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마른 키친타월로 이 국물을 닦아내면 붉은 녹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번쩍이는 속살이 드러납니다. *원리: 알루미늄은 크롬보다 경도(단단함)가 낮아 크롬 도금면에는 흠집을 내지 않지만, 산화된 철(녹)보다는 단단하기 때문에 녹만 선택적으로 긁어내며 화학적 환원 반응을 일으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 줍니다.
메탈 폴리시(금속 광택제)로 마무광 내기 녹을 1차로 걷어냈다면 금속 광택제인 '피칼(Pikal)'이나 '아우토솔(Autosol)'을 준비합니다.
부드러운 극세사 천에 광택제를 아주 미량(새끼손톱 크기) 묻힙니다.
크롬 부품을 원을 그리듯 지그시 문질러 준 뒤, 약품이 마르기 전에 깨끗한 새 천으로 강하게 비벼 닦아냅니다.
수십 년 묵은 미세한 흠집들이 메워지며 거울처럼 맑은 반사광을 되찾게 됩니다. 단, 광택제 역시 아주 미세한 연마 성분이 있으므로 너무 자주 문지르면 도금이 얇아지니 1년에 한두 번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본체 도색면 관리: 유광 도색 vs 크링클(주름) 도색의 관리 이원화
타자기 몸체의 도색 방식에 따라 관리법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야 소중한 도장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유광 글로시 도색 (Glossy Finish) 1930년대 검은색 언더우드(Underwood)나 로얄(Royal) 타자기처럼 반질반질하고 거울처럼 빛나는 유광 바디는 먼지와 지문, 잔스크래치에 취약합니다.
먼지를 먼저 부드러운 붓으로 완전히 털어낸 뒤, 세차용 '왁스(Liquid Car Wax)'나 '물왁스(물 분사형 퀵 디테일러)'를 사용해 관리합니다.
천에 왁스를 묻혀 가볍게 닦아주면 미세한 스크래치가 메워지고 슬릭감(미끄러운 질감)이 살아나 먼지가 내려앉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컴파운드(흠집 제거제)는 연마력이 강해 빈티지 도색의 탑코트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으므로 아주 미세한 스크래치라도 되도록 사용을 자제해야 합니다.
무광 주름 도색 (Crinkle Finish / Wrinkle Paint) 모래알처럼 거칠거칠하게 마감된 검은색 주름 도색 바디는 멋스럽지만 틈새에 먼지가 끼기 좋은 구조입니다.
이 주름 도색면에는 절대로 자동차용 고체 왁스나 액체 왁스를 바르면 안 됩니다! 왁스가 하얗게 굳어 미세한 틈새에 박히면 절대로 빠지지 않아 타자기 외관을 망치게 됩니다.
주름 도색 청소는 미세한 미술용 붓에 '라이터 기름'을 살짝 묻혀 틈새의 기름때를 털어내 건조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세척 후 도색이 너무 하얗게 뜨거나 건조해 보인다면, 극소량의 '베이비 오일'이나 '미네랄 오일'을 부드러운 솔에 묻혀 표면에 아주 얇게 쓸어주듯 도포합니다. 오일이 주름 틈새로 스며들면서 묵직하고 깊은 오리지널 검은색 색감이 감쪽같이 되살아납니다.
영롱한 빛을 유지하는 일상 속 유지 습관
크롬과 도색을 열심히 닦아놓았더라도, 타자기를 칠 때 우리 손가락에서 나오는 땀과 산성 성분이 묻으면 금방 다시 산화가 시작됩니다.
가장 좋은 예방책은 타이핑을 마친 후 책상 위에 둔 극세사 천으로 자판 테두리와 핸들 등 손이 닿은 부위를 가볍게 스윽 닦아주는 습관을 지니는 것입니다. 단 10초의 습관만으로도 크롬 도금 부품의 눈부신 광택을 수년 동안 변함없이 맑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크롬 위로 비치는 은은한 조명 불빛 아래에서 오늘 밤 가벼운 타이핑을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3줄 핵심 요약
크롬 도금 부품에 슬어버린 붉은 녹은 알루미늄 포일을 둥글게 뭉쳐 물이나 콜라를 묻혀 살살 문지르면 상처 없이 깨끗하게 제거됩니다.
유광 바디는 먼지를 턴 후 자동차용 물왁스로 잔스크래치를 예방하고, 거친 주름 도색(크링클) 바디에는 하얀 자국이 남는 왁스 대신 미술용 붓과 극소량의 미네랄 오일을 사용해 색감을 살려야 합니다.
타이핑 후에는 자판 테두리 등 손이 닿은 크롬 부위를 마른 극세사 천으로 가볍게 닦아 손의 땀으로 인한 재산화를 막아주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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