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제품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베지터블 가죽'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화학 성분인 크롬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탄닌 성분으로 무두질한 이 가죽은, 가죽 관리의 꽃이라 불리는 '에이징(Aging)'과 '태닝(Tanning)'을 가장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소재입니다. 처음 샀을 때는 뽀얗고 밝은 살구색이었던 가죽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은은한 황금빛 브라운 톤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것 같은 독특한 애착을 줍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베지터블 가죽을 처음 접하는 많은 입문자분이 의욕만 앞서 큰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제가 처음 베지터블 가죽으로 된 지갑을 장만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인터넷에서 햇빛에 구우면 예쁜 갈색이 된다는 글만 읽고, 새로 산 지갑을 한여름 볕이 내리쬐는 아파트 베란다 창가에 온종일 방치해 두었습니다. 며칠 뒤 확인한 지갑은 고급스러운 갈색이 아니라, 유분이 다 메말라 겉면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군데군데 얼룩이 덜룩하게 탄 갈색 가방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가죽 표면은 푸석해져서 만질 때마다 거친 소리가 났죠. 베지터블 가죽을 예쁘고 균일하게 태닝시키기 위해서는 빛의 양과 시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베지터블 가죽이 햇빛을 받으면 변하는 원리
가죽이 빛을 받아 색이 짙어지는 현상은 사람의 피부가 햇빛에 타는 원리와 매우 비슷합니다. 식물성 무두질을 거친 가죽 내부에는 탄닌 성분과 함께 가죽 특유의 자연 오일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가죽에 자외선(UV)이 닿으면 가죽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오일 성분이 표면으로 서서히 배어 나오게 됩니다.
배어 나온 오일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되고, 자외선이 탄닌 성분을 자극하면서 가죽 고유의 색상이 점점 짙은 황금빛이나 붉은빛이 감도는 브라운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죽 표면에는 자연스러운 천연 보호막(파티나)이 형성되어 은은한 광택까지 돌게 됩니다.
얼룩 없이 깔끔한 황금빛 태닝을 위한 광량 제어법
많은 분이 "그냥 해가 잘 드는 곳에 던져두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무작정 강한 직사광선에 노출하면 가죽의 수분과 유분이 동시에 파괴되어 가죽이 경화되고 얼룩이 생깁니다. 실패 없는 태닝을 위한 안전한 제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2주간의 소프트 태닝 (간접광 활용) 새 제품을 사자마자 뙤약볕에 가져가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처음 2주 동안은 실내의 자연광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거실 테이블이나 창문에서 1~2m 떨어진 그늘진 곳에 두세요. 강한 자외선 대신 부드러운 간접광으로 가죽 내부의 오일이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는 마중물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하루에 한 번씩 제품의 앞뒷면 위치를 뒤집어주어 빛이 닿는 면적을 균일하게 맞춰야 얼룩이 생기지 않습니다.
3주 차 이후의 밸런스 태닝 (시간 제어) 어느 정도 옅은 노란빛이 돌기 시작하면 조금 더 적극적인 태닝이 가능합니다. 하루 중 가장 볕이 강한 정오(오후 12시~2시)의 직사광선은 피하고, 비교적 부드러운 오전 9시~11시 사이의 아침 햇살을 쬐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노출 시간은 최대 1시간에서 2시간을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햇빛을 쬐어준 후에는 가죽의 온도가 올라가 있으므로, 반드시 서늘한 그늘에서 가죽을 식혀주는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태닝 전후 필수적인 유분 보충 루틴
빛을 제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화학적 균형을 맞춰주는 '오일링'입니다. 자외선은 가죽 내부의 수분을 앗아가기 때문에, 태닝 전후로 적절한 영양 공급이 동반되어야 가죽이 굳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합니다.
태닝을 시작하기 전날, 지난 4편에서 다룬 가죽 컨디셔너나 순수한 식물성 가죽 오일을 부드러운 천에 아주 얇게 펴 발라줍니다. 오일이 가죽 내부에 완전히 스며들도록 밤새 그늘에서 말린 뒤 다음 날 태닝을 시작하면, 오일 층이 자외선으로부터 가죽 섬유가 직접 파괴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여 훨씬 부드럽고 맑은 색상으로 태닝이 진행됩니다.
또한 일정 기간 태닝이 끝난 후 가죽이 푸석해진 느낌이 든다면, 즉시 가죽 에센스를 발라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에이징된 가죽의 수명이 오래갑니다. 서두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 빛을 나누어주며 관리하는 여유가 베지터블 가죽을 나만의 명품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핵심 요약 3줄]
베지터블 가죽의 태닝은 내부의 탄닌과 오일 성분이 자외선 및 산소와 반응하여 표면으로 올라오며 색이 짙어지는 현상입니다.
초기 2주간은 강한 직사광선을 피해 실내의 부드러운 간접광으로 균일하게 빛을 쬐어주어야 얼룩과 가죽 경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태닝 전후로 전용 컨디셔너를 소량 발라 유수분을 미리 보충해 주어야 가죽 조직이 마르지 않고 부드러운 광택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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